과거에는 가전기기 수리기사들이 직접 기판에 납땜해가며 수리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품 자체를 교환하는 것이 숙련된 기술자를 양성하고 수리하는 비용보다 싸기 때문에, AS에서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수리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때문에 기사들의 심화적인 기술력은 일정 부분 후퇴했지만 생산성은 늘어났고, 수리기술은 실전되지 않고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았다. AI의 보편적인 활용으로 소프트웨어 개발도 이 길을 따르리라 본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나만 가지고 있어야 주위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다. 모두에게 프리미엄 AI가 허락된 지금, 대충 휘갈겨 만든 것을 외부에 보이는 것은 이제 만든 주체를 (사람을 직접 고용할 여력이 없는) 영세하거나 싸구려로 인식되게 만든다. 당장 시각적으로 와닿는 미디어가 그 대상이 되는데, 예를 들어 이제 제법 보이는 기본적인 AI 삽화를 사용하는 뉴스기사는 일단 그 성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AI는 단순 사무 일자리는 파괴하겠지만, AI를 얼마나 차별되도록 응용할 수 있느냐로 기존 직업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 것이다.
테이블 위에 쌀알들을 한가득 쏟았다고 하자. 그리고 거기에서 우연히 마침 마음에 쏙드는, 오로지 나에게만 분간되는 쌀 알갱이 한 톨이 있어 그것을 골라 내고자 한다고 하자.
마침 테이블 앞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 행위를 구두로 지시하면 쉽게 속이 터진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거기서 더 아래로. 너무 내려갔네. 비켜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그렇다. 이것은 직접 하는 편이 훨씬 수고가 덜 든다.
이 일화는 AI에게 무엇을 지시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AI에게 큰 그림을 지시하는 것은 매우 가성비 있는 행위이지만, 디테일에 집착할수록 들어가는 노력 대비 기대하는 결과는 쉽게 어긋난다. 운좋게 그 어긋남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확률의 영역이다.
여전히 우리가 AI에게 지시할 수단이 텍스트로 크게 제한되는 한계 속에서, 이 난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AI를 통한 완성도 있는 작업을 추구하는데 있어 병목이 되며, 비슷한 수준의 AI 활용 속 에서도 보다 특출난 결과물이 구분되는 성분의 하나가 된다. 이것이 AI의 등장에도, 디테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AI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여전한 경쟁력으로 남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일상에서 섬세함은 대개 경제적 타협의 대상이 되므로, 아마도 전문가의 영역은 장인, 예술과 같은 수준의 입지를 가지되 그 폭은 더 좁아든다.
사람은 때로 자신이 뭔가 갈망한단 느낌은 가지면서도 도대체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설령 그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 개념을 성립하는데 또한 어려움이 있다.
그나마도, 그 세부사항을 구체화했을 때의 모순과 오류는 필연적이라 할 만큼 나타난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상 조차도 글자로 명징하게 나타내지 못해 답답해 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많은 디테일은 자의반 타의반 제거된다. 여기까지 오면서 피로에 의한 나태는 덤이다.
결국 기대한 것의 아주 일부분 만이 AI에게 제공된다. 그래서 결과물은 목표로 했던 상에 다다르기 힘들고 많은 부분을 운—확률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운에 의한 결과물이 갈수록 제법 그럴 듯 해져서는, 생각했던 바와 설령 다를 지라도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AI는 잘못이 없다. 사람이 병목이다. AI에게 열심히 설명해야 하는 현실에서, 머리에 케이블이라도 꽂는 일상이 오기 전까지, AI는 당신과 일자리를 쉽게 대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