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5·18 조롱과 ‘참교육’이라는 응징

Prompt:

7/4/2026, 7:16:33 AM

최근 배재고 야구팀의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조롱이 문제가 되어 강력한 징계가 예고되었어. 우리는 언젠가부터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하고 비용이 크고 느리지만 정석적인 방법 대신에, 대상자를 간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고 주어진 배려를 회수하며 그 쾌감을 관람석에서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느낌이야.

이 사건은 완전히 들어 맞지는 않지만 다음의 예의 연장선 상에 있어. 한국에선 일단 여성에 대한 배려가 많이 사라진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권이 신장되며 남성들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권리가 제한된 약자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 존재로 재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동시에 우리는 최근 청소년에 대한 형사처벌연령을 낮추는데 공감하고 있고, 이것은 청소년 범죄가 성인도 경악할 수준으로 올라선 데다 그들이 법적 보호를 이용하는 영악함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야. 즉 우리는 이전에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평가하였던 대상에 대해 그들이 전면적으로 혹은 어떤 특정 부분에서 약자가 아니며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고, 이것이 그들에 대해 이전보다 냉정, 냉랭하게 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배재고 선수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건 다 아는' 성인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청소년이며, 그들이 영악함을 보였다고 판단하고 있어. 여성, 청소년의 권리 신장은 옳은 방향이지만 기존 기득권 층 --여성을 포함한 성인, 혹은 남성-- 으로서는 스트레스이며 이것이 빠르게 인내심을 바닥낸 상태에서 사건을 판단하게 하고 있어. 즉 간편하게 대중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끔 '애들에게 세상 무서운 것을, 인생이 어떻게 꼬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자'에 편중되었다는 인상이야. 동시에 정치권이나 언론은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그들에 대한 적법한 징계를 떠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야.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지? 평가하도록 해.

Response:

7/4/2026, 7:16:34 AM

사건 자체의 사실관계와 징계 수위가 현재 진행형일 가능성이 커서, 먼저 확인 가능한 최신 보도 기준으로 놓고 보겠습니다. 그다음 사용자가 제기한 “응징의 쾌감”과 “약자성 재평가” 프레임을 분리해 평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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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iding a concise answer with minimal legal detail

Alright, the user needs an evaluation, but I don't need to go overboard with legal details. I might mention juvenile law briefly, but not focus on it too much. If I use online sources, I'll make sure I provide citations for the information I reference. No need to overcomplicate.

Thought for 11s

이 문제는 “5·18 조롱은 명백히 중대한 잘못이다”와 “그렇다고 청소년 선수들의 인생을 관람형 응징의 소재로 삼아도 되는가”를 동시에 붙잡고 봐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잡으면 판단이 쉽게 망가집니다.

확인되는 보도 기준으로는, 배재고 야구부는 광주제일고와의 경기 중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응원 구호로 논란이 되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를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올해 남은 주요 대회 출전이 사실상 막히는 효과가 생겼고, 감독 및 선수 개인에 대한 추가 징계도 검토되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Daum) 학교 차원에서도 관련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경향신문)

1. 먼저, 이 사건은 “장난”으로 축소할 수 없다

5·18은 단순한 지역 사건이 아니라 국가폭력, 민주주의, 희생자와 생존자의 기억이 얽힌 한국 현대사의 핵심 상처입니다. 상대가 광주일고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것은 일반적인 조롱 응원이나 미성숙한 장난보다 훨씬 무거운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몰라서 그랬다”, “고등학생인데 봐주자”는 식의 면책은 부적절합니다. 고교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은 학교 대표이자 대회 참가자이고, 특히 더그아웃에서 집단적으로 나온 행위라면 경기장 질서, 상대 존중, 역사적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감수성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책임을 묻는 것과 사회적으로 박살내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필요하고, 후자는 위험합니다.

2. 당신이 지적한 “응징의 관람화”는 실제로 중요한 문제다

나는 이 사건에서 가장 위험한 흐름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봅니다. 대중은 어느 순간부터 사건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누군가가 강하게 처벌받는 장면을 통해 도덕적 쾌감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구조는 대체로 이렇게 작동합니다.

첫째,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한다. 둘째, 대중은 분노한다. 셋째, 정치권·언론·기관은 그 분노를 감지한다. 넷째, 복잡한 원인 분석보다 빠르고 강한 징계가 요구된다. 다섯째, 징계가 내려지면 “참교육”, “인생 실전”,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식의 관람형 반응이 붙는다.

이때 제도는 교육기관이나 스포츠 단체의 규율 장치라기보다, 대중감정의 집행 도구처럼 변질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처럼 대상이 고등학생일 때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청소년이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과, 청소년에게 성인과 동일한 방식의 낙인·사회적 사형을 가해도 된다는 주장은 같지 않습니다.

3. “약자였던 대상이 더 이상 약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당신의 분석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과거에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집단을 점점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청소년, 학생, 피해자성 있는 집단 등에게 예전보다 더 많은 권리와 발언권이 생기자, 일부 대중은 이들을 더 이상 일방적 약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인식이 바뀝니다.

“저 사람들도 이제 권리를 가진다.” “그렇다면 책임도 성인처럼 져야 한다.” “예전처럼 봐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보호를 악용한다.” “그러므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 흐름 자체가 전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권리 신장에는 책임 의식이 따라야 하고, 청소년이라고 해서 반역사적 조롱이나 혐오 표현이 면책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약자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약자성의 성격이 복잡해진 것입니다.

여성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항상 약자인 것도 아니고, 항상 강자인 것도 아닙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청소년은 온라인 문화, 조롱 코드, 집단 가해에서는 매우 영악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법적·사회적·경제적 결과를 감당하는 능력에서는 여전히 미성숙하고 취약합니다.

즉 “알 건 다 안다”와 “성인처럼 결과를 감당할 수 있다”는 다릅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책임윤리가 아니라 복수심이 됩니다.

4. 6개월 출전정지는 ‘징계’로는 가능하지만, ‘비례성’ 논쟁은 정당하다

이번 징계가 법적으로나 규정상 가능한지와, 교육적으로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경기장 질서 문란 행위 관련 규정 등을 근거로 중징계를 내린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Daum) 그리고 5·18 단체 등은 엄정 조치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냈고, 반대로 일부 정치권에서는 학생들의 진학·프로 진출에 미칠 영향 등을 이유로 과도하다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Daum)

나는 여기서 징계 자체는 필요하지만, 단체 6개월 출전정지가 최선인지는 의문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단체 출전정지는 잘못에 직접 관여한 학생뿐 아니라, 관여 정도가 낮거나 없을 수 있는 선수들에게도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교 야구에서 특정 시즌의 전국대회 출전은 진학, 스카우트 평가, 선수 경력에 매우 직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교육적 징계”가 아니라 “집단의 미래 기회 박탈”처럼 작동할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단체 스포츠에서는 팀 문화와 지도 책임이 중요합니다. 더그아웃에서 집단 구호가 나왔고 지도진이 통제하지 못했다면 팀 전체에 책임을 묻는 논리는 성립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이 반드시 “6개월 출전정지”여야 하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합니다.

더 정교한 방식은 이런 조합이었을 수 있습니다.

관련 학생 개인에 대한 징계, 지도자 징계, 학교 야구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교육, 5·18 관련 현장 교육, 일정 기간 응원·더그아웃 행동 제한, 사회봉사, 일부 대회 출전 제한, 팀 문화 개선 보고서 제출 등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쪽이 더 느리고 귀찮지만, 교육기관과 학생 스포츠에는 더 맞는 방식입니다.

5. 정치권과 언론의 개입은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보이는 반응은 양쪽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한쪽은 “강력 처벌”을 통해 5·18을 지키는 태도를 과시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학생 인생 망친다”는 논리로 반대편의 도덕적 과잉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학생들을 실제 교육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자기 진영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소재로 쓸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5·18은 한국 정치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순식간에 “학생 스포츠 윤리 문제”에서 “역사전쟁”, “지역감정”, “일베 문화”, “표현의 자유”, “좌우 대립”으로 확장됩니다. 이때 사건의 실제 당사자인 학생, 피해를 느낀 광주일고, 학교 교육의 실패, 스포츠 현장의 문화 개선 같은 핵심은 뒤로 밀립니다.

당신이 말한 포퓰리즘 의심은 타당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용한다고 해서 원래 잘못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 가능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절차와 비례성을 더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야 합니다.

6. 이 사건을 여성·청소년에 대한 냉랭함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유용하지만, 그대로 등치하면 위험하다

당신의 프레임은 사회적 정서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 사회가 점점 “보호”보다 “책임 추궁” 쪽으로 기울고 있고, 특히 과거 약자로 분류되던 집단이 권리를 획득할수록 대중의 인내심이 줄어드는 현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여성에 대한 배려 감소와 너무 직접적으로 등치하면 약간의 무리가 생깁니다. 여성 문제는 성별 권력, 노동시장, 병역, 연애·결혼 시장, 온라인 페미니즘 반발 등 복합적 갈등이고, 이번 사건은 역사 조롱, 청소년 스포츠, 지역 상처, 학교 교육의 실패가 결합한 사건입니다.

공통점은 있습니다. “더 이상 약자로 봐주지 않겠다”는 정서입니다.

하지만 차이도 큽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 기억이 구체적이고, 발언의 내용이 역사적 폭력의 조롱으로 해석되며, 공적 경기장에서 상대 학교를 향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냉랭함”만으로 설명하면 사건의 고유한 심각성이 희석될 수 있습니다.

7.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

나는 다음 입장이 가장 냉정하다고 봅니다.

첫째, 행위는 명백히 잘못이다. 5·18 조롱은 장난이나 응원문화로 넘어갈 수 없다. 학생들이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책임은 교육적이어야지 파괴적이어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수치심을 평생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조롱했는지 실제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징계는 비례성과 개별성을 가져야 한다. 누가 주도했는지, 누가 따라 했는지, 지도진은 언제 알았는지, 학교는 어떤 문화를 방치했는지 구분해야 한다. 단체 징계가 필요하더라도 그 효과가 무고하거나 관여 정도가 낮은 학생에게 과도하게 번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넷째, 대중은 ‘참교육’이라는 말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 표현은 대개 교육이 아니라 응징의 쾌감을 포장한다. 아이들에게 세상 무서운 줄 알려준다는 말은 쉽게 정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자기 분노를 미성년자에게 투사하는 방식일 수 있다.

다섯째, 5·18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5·18은 국가폭력과 비민주성에 맞선 기억입니다. 그 기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절차, 비례성, 교육 가능성을 무시한다면 이상한 역설이 생깁니다. 민주주의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비민주적 응징을 택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이 사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엄정하지만 잔혹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배재고 선수들의 행위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하고, 징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는 제물이 아니라, 학생·지도자·학교·스포츠 조직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교정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느낀 불편함은 꽤 정확합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복잡한 개선”보다 “빠른 응징”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 정서는 피해자와 역사적 상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새로운 형태의 폭력적 관람문화가 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핵심 질문은 “봐줄 것인가, 박살낼 것인가”가 아닙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학생들이 저지른 반역사적 조롱을 분명히 책임지게 하되, 그 책임을 통해 더 나은 시민으로 돌아올 길을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그들을 응징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박수칠 것인가.

나는 전자가 맞다고 봅니다. 5·18을 진지하게 존중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Sources:



Prompt:

7/4/2026, 7:26:15 AM

그들에 대한 출전정지징계는 일부 학생에게 있어 향후의 진로, 미래, 인생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어. 그들의 징계는, 그들이 저지른 과오에 비해 적법하고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의심이 있어. 예를 들어 강도, 폭력, 살해 등은 보편적으로 우리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도덕의 일부였고, 이것을 위반했을 때 이 징계는 적합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는 청소년층이 현실의 극우 문화, 사상에 익숙해지는 것을 우려하였지만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교육하고 교정할 충분한 시간이나 노력, 수고를 가지지 못하지 않았나? 즉, 우리는 애초에 그들이 '알 건 다 아는'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과대 해석을 한 것은 아닌가? 문제가 되는 사상과 논리는 성인들의 세상에서도 일부 지지를 받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척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Response:

7/4/2026, 7:26:18 AM

이번 질문은 징계의 정당성보다 더 앞단, 즉 “그 학생들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행위의 악질성과 행위자의 인식능력을 분리해 보겠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바로 거기입니다. 사회는 지금 학생들에게 “너희는 알 건 다 알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들이 무엇을 알아야 했는지, 왜 그것이 잘못인지, 어떤 온라인·정치문화가 그들을 오염시켰는지에 대해 충분히 가르쳤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안을 이렇게 봅니다.

행위는 중대하다. 그러나 현재의 징계가 행위자의 인식 수준, 교육 실패, 집단문화, 진로 피해까지 비례적으로 고려한 처분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크다.

1. “알 건 다 아는 고등학생”이라는 말은 위험하게 단순하다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이 아닙니다. 5·18이 무엇인지, 특정 지역을 조롱하면 안 된다는 것, 폭력적 역사 사건을 희화화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배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전혀 몰랐다”는 식의 변명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 지식과 역사적·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5·18은 광주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이라는 시험용 지식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다음까지 충분히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5·18이 왜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사건인지, 왜 ‘탱크’, ‘북한군’, ‘폭동’ 같은 프레임이 오랫동안 피해자와 지역사회를 모욕해왔는지, 왜 극우 온라인 문화가 이런 표현을 ‘밈’처럼 소비하는지, 그 밈이 실제 피해자·유족·지역사회에는 어떤 폭력으로 작동하는지.

이것은 교과서 몇 줄이나 시험 문제 몇 개로 충분히 체화되는 종류의 지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고등학생이면 다 안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알았을 수 있지만, 자신들이 어떤 역사적 악의 계보 안에 들어가 있는지는 충분히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2. 우리는 극우 문화의 침투를 걱정했지만, 실제 교육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당신의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간 청소년과 젊은 남성층 일부가 극우적·혐오적 온라인 문화, 반페미니즘, 지역비하, 역사왜곡 밈에 노출되는 것을 걱정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대체로 탄식과 비난에 머물렀습니다.

“요즘 애들 왜 저러냐.” “일베식 문화가 퍼졌다.” “역사교육이 문제다.” “가정교육이 문제다.”

여기서 멈췄습니다.

정작 학교 현장에서 온라인 밈과 역사왜곡을 연결해 가르쳤는가? 청소년들이 왜 혐오 코드를 재미로 소비하는지 분석했는가? 운동부처럼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집단문화 안에서 어떤 조롱 언어가 유통되는지 들여다봤는가? 스포츠 지도자들에게 역사·인권·지역차별 교육을 체계적으로 했는가? 극우적 표현이 단순 정치 의견이 아니라 특정 피해자 집단에 대한 2차 가해가 되는 원리를 설명했는가?

대체로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는 사실상 이렇게 행동한 셈입니다.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 충분히 감시하지 않았다. 충분히 교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면 “너희는 알았어야 한다”며 강하게 처벌한다.

이것은 책임교육이라기보다 사후 응징에 가깝습니다.

3. 문제 사상이 성인 세계에서도 유통된다는 점을 봐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한 말은 진공 상태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5·18을 폄훼하거나 희화화하는 언어는 일부 성인 정치인, 유튜버, 온라인 커뮤니티, 극우 담론 안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되어 왔습니다. 최근 보도에서도 이 사건 이후 정치권 인사들이 “5·18이 성역화됐다”거나 징계를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배재고는 7월 6일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Hani)

이 점이 중요합니다. 학생들은 어떤 금기를 “몰래 위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성인 세계 일부에서 통용되는 냉소와 조롱의 언어를 흉내 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뀝니다.

“왜 저 학생들은 저렇게 나쁜가?”만이 아니라, “왜 성인 사회가 저런 언어를 계속 공급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중은 보통 후자는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로 갑니다. 성인 유튜버, 정치인, 커뮤니티, 학교 교육, 운동부 문화, 역사교육 실패를 건드리려면 복잡하고 오래 걸립니다. 반면 학생 몇 명과 학교 야구부를 강하게 징계하는 것은 빠르고 선명합니다.

그래서 징계가 도덕적으로 시원해 보일수록, 오히려 구조적 책임을 은폐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4. 강도·폭력·살해와 같은 보편도덕 위반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신이 든 비교도 핵심을 찌릅니다.

강도, 폭력, 살해 같은 행위는 거의 모든 사회와 가정, 학교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금지하는 보편도덕입니다.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규범은 역사적 맥락을 깊게 몰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18 조롱, 역사왜곡, 지역 혐오, 극우 밈 소비는 좀 더 복합적입니다. 물론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이해하려면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과 담론의 계보를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탱크”라는 말이 왜 단순 군사 장비 언급이 아니라 5·18 피해자와 광주 시민에게 폭력적 기호가 되는지, “스타벅스” 같은 표현이 왜 단순 농담이 아니라 지역 조롱으로 읽히는지, 이런 부분은 학생들이 자동으로 알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MBC 보도는 당시 구호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으로 들렸고, 5·18 폄훼와 지역비하 논란으로 확산됐다고 전했습니다. (MBC NEWS)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단순한 “보편도덕 위반”보다 역사적 문해력, 시민교육, 온라인 정치문화, 지역차별 감수성의 실패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처분도 단순히 “강하게 때리면 배운다”가 아니라, “어떤 무지와 문화가 이 행위를 가능하게 했는가”를 겨냥해야 합니다.

5. 6개월 출전정지는 비례성 측면에서 의문이 크다

보도에 따르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이로 인해 당장 청룡기 2회전부터 출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YTN) 학교 차원에서는 논란 학생 2명이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광주제일고 코치가 심판에게 항의했으며 배재고 코치진은 경기 후 사과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여기서 핵심은 팀 전체 6개월 출전정지가 직접 행위자, 방조자, 무관한 선수, 지도자의 책임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했는가입니다.

고교 야구 선수에게 6개월은 매우 큽니다. 특히 3학년이라면 사실상 남은 시즌, 진학, 스카우트 노출, 프로 진출 가능성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성인 프로팀의 벌금이나 출장정지와 다릅니다. 학생 선수에게는 “교육적 제재”가 곧 “미래 기회의 박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징계가 정당하려면 최소한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행위가 팀 차원의 조직적 행위였는가. 지도자가 알고도 방치했는가. 구호를 외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책임을 구분했는가. 팀 전체 출전정지가 다른 대안보다 교육적으로 더 적합한가.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징계 효과가 특정 학생의 진로를 과도하게 파괴하지 않는가.

이 조건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6개월 출전정지는 “엄정한 징계”라기보다 사회적 분노에 맞춘 과잉 처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6. “나쁜 사상에 물든 학생”과 “나쁜 학생”은 구분해야 한다

이 사건을 보는 가장 나쁜 방식은 학생들을 곧바로 “극우”, “일베”, “악질”, “인생 망해도 싼 놈들”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나쁜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정치적 확신을 가진 역사왜곡론자인지, 단순히 온라인 밈을 따라 한 것인지, 집단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 일부 학생이 주도하고 나머지는 동조했는지,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청소년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더 잔인할 수 있고, 더 무지할 수 있고, 더 쉽게 집단조롱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만큼 교정 가능성도 더 크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이들을 너무 빨리 “악한 행위자”로 확정하면, 교육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습니다.

그 결과는 역설적일 수 있습니다. 강한 징계가 학생들에게 진짜 반성을 만들기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찍혔다”, “5·18은 말도 못 꺼내는 성역이다”, “어른들이 우리 인생을 망쳤다”는 피해자 의식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우 문화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게 밀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7. 그렇다고 “몰랐으니 봐주자”는 결론도 아니다

여기서 반대쪽 오류도 경계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성인 세계의 오염된 담론을 흉내 냈고, 교육이 부족했으므로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그것이 면책으로 가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피해는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광주일고 선수와 관계자, 5·18 피해자·유족·광주 시민 입장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학생 장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공적 경기장에서 상대를 겨냥해 역사적 상처를 조롱했다면, 그 행위는 반드시 공식적으로 부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징계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징계입니다.

나는 이런 방향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관련 학생 개인에 대한 공식 징계. 지도자에 대한 관리·교육 책임 징계. 학교 야구부 전체의 5·18 역사교육 이수. 광주 방문, 묘역 참배, 피해자·전문가 강연 청취. 광주일고에 대한 직접 사과와 회복 절차. 일정 기간 응원·더그아웃 행동 제한. 재발 방지 계획 제출. 주도 학생에게는 일정 경기 출전정지 또는 봉사명령. 팀 전체 대회 출전정지는 최소화하거나 기간을 줄이는 방식.

즉 처분의 중심을 진로 차단이 아니라 인식 교정과 피해 회복에 두어야 합니다.

8. 이 사건의 진짜 질문은 “얼마나 세게 벌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 사건을 제대로 보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나쁜 학생들을 얼마나 세게 응징할 것인가? → 이것은 대중이 좋아하는 질문입니다.

학생들이 왜 그런 말을 배웠고, 왜 재미있다고 느꼈으며, 왜 지도자는 막지 못했고, 왜 학교는 사전에 교정하지 못했는가? → 이것이 제도적으로 필요한 질문입니다.

5·18을 모욕하지 못하게 하려면 겁을 줘야 하는가, 아니면 이해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 이것이 교육기관이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피해자와 지역사회의 존엄을 회복하면서도, 학생들이 사회로 돌아올 길을 남길 수 있는가? → 이것이 민주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나는 이번 6개월 출전정지 징계가 이 질문들에 충분히 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행위의 중대성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징계가 너무 빠르고 선명하며, 대중감정에 잘 맞고, 교육적으로는 둔탁하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결론

당신의 의심은 정당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알 건 다 아는 영악한 존재”라고 너무 쉽게 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성인 사회가 방치하거나 유통시킨 극우적·조롱적 문화를 흡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문화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반박하고 교정한 적이 부족했다면, 사건이 터진 뒤 학생들의 진로를 강하게 타격하는 방식으로 응징하는 것은 비례성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사건에서 필요한 태도는 면책도 아니고 파괴도 아닙니다.

가장 적합한 원칙은 이렇습니다.

행위는 엄중히 부정한다. 피해자와 광주일고에는 분명히 사과한다. 주도자와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징계는 학생의 미래를 불필요하게 파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회복·재발방지 중심으로 설계한다.

5·18의 의미를 지키려면 처벌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처벌이 민주적이고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5·18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작 그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의 사회적 응징을 반복하게 됩니다.


Sources:



Prompt:

7/4/2026, 7:43:29 AM

우리는 사회에서 극우적인 문화, 사상, 커뮤니티가 표면적으로 대두되고 있어. 그리고 이들에 대한 지지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되지 않아. 성인 사회에서도,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우리는 이들을 완전한 하위 문화로 치부할 수도 없고 설득도 어려운 것이 실정이야. 그런 실태 속에서도 교육은 청소년에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가르칠 수 있나? 극우 문화에 대해 우리는 보편적 도덕이라는 편한 울타리를 쳐왔고 이것은 이제 낡고 쉽게 허물 수 있는 것이 되었어. 우리는 다양한 주장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을 시도하여야 하나?

Response:

7/4/2026, 7:43:31 AM

이 질문은 “극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보다 “민주사회가 강한 반민주적 주장 앞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최근 흐름을 확인한 뒤, 교육의 한계와 가능한 설계를 나눠 평가하겠습니다.

확인해보니, 해외 정책기관들은 이미 “금지·훈계”보다 디지털 문해력, 또래 규범 형성, 비안보화된 예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문제를 경찰·징계 사안으로만 처리하면 늦고 거칠다는 판단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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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 for 17s

가능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이건 나쁜 거야. 외우고 따르라”는 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 필요한 교육은 단순한 도덕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판단 훈련에 가깝습니다.

핵심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청소년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 교육은 ‘정답 주입’이 아니라, 극우 담론이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이는지까지 해부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다만 “모든 주장을 똑같이 열어놓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자”는 식으로 가면 오히려 극우 담론에 유리해질 수 있다.

1. 보편도덕의 울타리는 약해졌다

당신 말대로 “보편적 도덕”이라는 울타리는 많이 약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인종차별은 나쁘다”, “지역비하는 나쁘다”, “민주화운동 조롱은 나쁘다”, “여성혐오는 나쁘다”는 말이 상당한 사회적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극우 문화는 이 울타리를 정면으로 부숩니다. 대체로 이런 방식입니다.

“그건 도덕이 아니라 좌파의 검열이다.” “그들은 약자가 아니라 특권층이다.” “우리가 진짜 피해자다.” “말 못 하게 하는 쪽이 파시스트다.” “역사는 승자가 쓴 것이다.” “기성 언론과 학교가 세뇌한다.” “팩트는 따로 있다.”

이 구조가 강력한 이유는 단순히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언어를 권력언어로 재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즉 “차별하지 말라”는 말을 “너희가 우리 입을 막는다”로 바꾸고, “역사적 피해자를 존중하라”는 말을 “특정 집단을 성역화한다”로 바꿉니다.

그래서 “그건 나쁜 말이야”라고만 하면 효과가 약합니다. 청소년은 바로 반문합니다.

“왜 나쁜데요?” “누가 정했는데요?” “그쪽도 우리한테 혐오하잖아요?” “표현의 자유는요?” “그거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 아니에요?”

이 질문들은 때로 냉소적이고 방어적이지만, 교육이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회피하면 학생은 학교 밖 커뮤니티에서 답을 얻습니다.

2. 그렇다고 “모든 주장을 동등하게 검토하자”는 것도 위험하다

여기서 흔한 반작용이 있습니다. 보편도덕의 권위가 약해졌으니, 이제는 학생들에게 모든 주장을 열어놓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방향은 맞지만, 그대로 두면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극우 담론은 토론장에서 단순히 하나의 견해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통 다음 장치를 함께 가져옵니다.

음모론, 선택적 통계, 피해자 코스프레, 조롱 밈, 반지성주의, 역사 수정주의, 소수자 책임론, 남성 피해 서사, 엘리트 불신, 언론 불신, 알고리즘 증폭.

이런 담론을 준비되지 않은 교실에 “하나의 의견”으로 올려놓으면, 교사는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작된 담론에 공적 공간을 내주는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5·18은 민주화운동인가 폭동인가?”를 양쪽 주장 토론처럼 다루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이미 역사적·법적·제도적으로 상당히 정리된 문제입니다. 그런 방식은 비판적 사고가 아니라 역사왜곡의 재상연이 됩니다.

반면 이렇게 물을 수는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미 정리된 역사적 사실을 계속 의심하게 만들까?” “극우 커뮤니티는 어떤 단어와 농담으로 역사적 폭력을 희화화할까?”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 모욕은 어디서 갈라질까?” “내가 ‘그냥 밈’이라고 소비한 말은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어떤 주장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 때, 그 분노는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이것이 진짜 비판적 사고 교육입니다. 모든 주장을 같은 높이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주장과 주장 생산 장치를 함께 분석하는 것입니다.

3. 교육은 “정치적 중립”을 핑계로 도망가면 안 된다

학교는 정당정치의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민주주의, 인권, 역사적 사실, 혐오표현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교육은 정치적입니다. 단, 정파적이면 안 됩니다.

둘은 다릅니다.

정파적 교육은 “이 정당이 옳고 저 정당이 나쁘다”를 가르칩니다. 민주적 시민교육은 “어떤 주장이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파괴하는가”를 가르칩니다.

극우 담론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는 나쁘다”라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진영 선전입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을 시민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주장”, “폭력적 과거를 조롱하는 주장”, “선거 결과를 음모론으로 무력화하는 주장”, “언론·사법·의회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주장”이 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지는 가르쳐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극단주의 예방 관련 자료도 청소년이 온라인 콘텐츠를 평가하고 기만적 정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극단주의 집단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전과 모집을 한다는 점을 전제로 삼습니다. (European Commission) 유네스코 역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허위정보, 고정관념, 불관용을 극복하는 데 쓰일 수 있고, “비판적 공감”이 핵심 요소라고 봅니다. (UNESCO)

즉 국제적으로도 방향은 단순 훈계가 아닙니다. 정보 판단, 감정 조작 인식, 타자에 대한 공감, 온라인 선전 구조 이해로 가고 있습니다.

4. 극우 문화의 매력을 인정해야 교육이 가능하다

극우 문화는 단지 “나쁜 사상”이라서 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청소년에게 몇 가지 강한 심리적 보상을 줍니다.

첫째, 세계를 단순하게 설명해줍니다. “나라가 망가진 이유는 저 집단 때문이다.” “내가 힘든 이유는 누군가 특혜를 받기 때문이다.”

둘째, 소속감을 줍니다. 커뮤니티, 밈, 은어, 조롱 코드가 내부자 감각을 만듭니다.

셋째, 우월감을 줍니다. “나는 세뇌당한 대중과 다르게 진실을 안다”는 감각입니다.

넷째, 분노를 정당화해줍니다. 개인의 실패감, 남성 청소년의 박탈감, 경쟁 피로, 계층 불안을 정치적 혐오로 바꿔줍니다.

다섯째, 금기를 깨는 쾌감을 줍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을 때 “용감하다”, “솔직하다”, “깨어 있다”는 보상을 받습니다.

이 매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실패합니다. 교사가 “그건 혐오야”라고만 말하면, 학생은 “역시 기성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이렇게 들어가야 합니다.

“너희가 왜 그 말에 끌리는지 이해한다. 세상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집단이 특권을 얻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분노가 정말 정확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따져보자. 누가 너희 분노를 이용하고 있는지 보자. 그 주장이 사실을 설명하는지, 아니면 희생양을 만드는지 검토하자.”

이 방식이 훨씬 강합니다. 비난보다 해부가 필요합니다.

5.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은 필요하지만, 그냥 방임하면 안 된다

당신이 묻는 “다양한 주장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사실의 바닥이 있어야 합니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려면 먼저 사실과 허위, 해석과 조작, 의견과 선동을 구분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 법원의 판단, 공식 기록, 피해 증언, 학계의 축적을 모두 “각자 의견”으로 내려놓으면 사고가 아니라 혼란이 됩니다.

둘째, 규범의 바닥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사회는 모든 의견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인종청소, 학살 정당화, 피해자 모욕, 특정 집단의 시민권 박탈 주장은 토론 가능한 정책 의견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본 조건을 공격하는 주장입니다. 학생들은 이 경계선을 배워야 합니다.

셋째, 감정의 바닥이 있어야 합니다. 극우 담론은 논리보다 감정을 먼저 잡습니다. 분노, 모욕감, 피해의식, 조롱의 쾌감, 소속감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반박도 논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왜 이 주장에 끌리는가”를 스스로 관찰하게 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청소년 온라인 급진화 대응 연구도 “맥락적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청소년 주도 또래 규범 형성”, “비안보화되고 발달단계에 민감한 예방”을 권고합니다. 즉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다루는 방식보다, 그들이 실제로 쓰는 플랫폼과 또래 문화 안에서 규범을 다시 만드는 접근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ICCT)

6. “중립적 교사”보다 “공정하지만 기준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서 교사가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학생이 “5·18은 폭동 아니에요?”라고 물었을 때, 교사가 “양쪽 의견이 있지”라고 답하면 그것은 중립이 아닙니다. 역사왜곡에 공간을 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가 “그런 생각 하는 너는 나쁘다”고 몰아붙이면 교육이 닫힙니다.

좋은 응답은 이런 쪽입니다.

“그 주장은 어디서 봤니?”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무엇이니?” “그 자료는 누가 만들었고, 반대되는 기록은 무엇이니?” “국가기관·법원·역사 연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정리했니?” “그 주장이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그 주장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을까?”

이것은 학생을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주장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교육은 학생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생각의 출처와 약점을 보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7. 극우 담론은 “논박”만으로는 잘 안 무너진다

여기서 냉정해야 합니다. 교육이 모든 학생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미 강한 커뮤니티 소속감, 피해자 의식, 음모론적 세계관을 가진 학생은 단순 수업으로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극우 담론은 보통 반박을 먹고 자랍니다.

반박받으면 “역시 탄압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재받으면 “우리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교사가 지적하면 “학교가 좌편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비판하면 “기레기들이 숨기려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논박 + 관계 + 대안적 소속감입니다.

학생이 극우 커뮤니티에서 얻는 것을 학교와 사회가 다른 방식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인정, 소속, 토론의 장, 남성 청소년의 불안과 경쟁 피로를 말할 수 있는 공간, 불공정에 대한 정직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 “혐오하지 말라”고 하면 설득력이 약합니다.

한국의 청소년 혐오표현 연구도 청소년이 혐오·차별 표현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곳이 인터넷·커뮤니티·SNS이고, 다음이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라고 보고했습니다. 즉 학교 밖 미디어 환경이 핵심 노출 경로입니다. (NYPi) 그러므로 학교 수업만으로는 부족하고, 플랫폼·가정·지역사회·스포츠 단체·언론까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8. 극우 문화 대응 교육은 “검열 교육”이 아니라 “조작 저항 교육”이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극우는 나쁘다”라고만 가르치면, 그 교육은 쉽게 검열로 보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가르치면 방어력이 생깁니다.

“너의 분노가 누구에게 팔리고 있는가?” “너의 알고리즘은 무엇을 반복해서 보여주는가?” “어떤 콘텐츠가 너를 더 화나게 만들어 체류시간을 늘리는가?” “어떤 커뮤니티가 농담을 통해 혐오를 정상화하는가?” “어떤 주장이 사실 검증을 피하면서 ‘다들 알고 있지만 말 못 하는 진실’처럼 포장되는가?” “너는 정말 독립적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특정 커뮤니티의 언어를 대신 말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청소년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극우 커뮤니티는 청소년에게 “너는 깨어 있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그보다 더 강하게 물어야 합니다.

정말 깨어 있다면, 네 생각의 출처도 의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것이 비판적 사고 교육의 핵심입니다.

9. 배재고 사건 같은 경우에 적용하면

배재고 사건을 단순히 “5·18 조롱은 나쁘다”로 끝내면 부족합니다. 물론 그 말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더 가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 표현을 어디서 처음 봤는가. 그게 왜 웃기다고 느껴졌는가. 그 말을 같이 했을 때 어떤 소속감이 생겼는가. 그 표현이 실제로 어떤 역사왜곡 담론과 연결되는가. 광주일고 선수들은 그것을 어떻게 들었을까. 5·18 피해자와 유족은 왜 그것을 단순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너희가 조롱한 것은 특정 학교였나, 특정 지역이었나, 아니면 국가폭력의 피해 기억이었나.

이렇게 가야 합니다.

징계만으로는 학생이 “나는 나쁜 짓을 해서 벌받았다”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담론에 올라탔는지”는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더 은밀하게 같은 문화를 소비합니다.

10. 결론: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준 없는 상대주의는 안 된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우 주장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하자”가 아닙니다.

정확한 방향은 이렇습니다.

사실은 엄격하게 가르친다. 민주주의의 기본 규범도 분명히 가르친다. 다만 학생의 질문과 불만을 억누르지 않는다. 극우 담론의 매력과 구조를 공개적으로 해부한다. 학생이 자기 분노와 정보환경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 처벌보다 교정, 낙인보다 이탈 경로를 중시한다.

보편도덕의 울타리가 약해졌다면, 울타리를 더 높이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제는 학생들이 왜 그 울타리가 필요한지, 누가 그것을 무너뜨리려 하는지, 무너졌을 때 누가 피해를 입는지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만 그 판단 교육은 무중력 상태의 자유토론이 아니라, 사실·인권·민주주의라는 바닥 위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이어야 합니다. 그 바닥이 없으면 비판적 사고는 곧 냉소와 음모론의 먹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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